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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널, 박경수입니다"

국민화가 '이중섭'이 기거했던 마포는 어디일까? 신수동 광성고 후문 앞인 듯...

"화가 이중섭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꺼예요. 그림에 문외한인 저도 '소'를 그린 국민화가, '소'를 통해 민중의 울분을 토해낸 저항작가, 가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족과 떨어져 일찍 세상을 등진 비운의 화가. 수식어가 많다는건 그 만큼 탁월한 예술혼(藝術魂)을 지닌 우리나라 대표 화가라는 의미일텐데요. 고인이 한국전쟁 직후 한때 마포에 기거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됐네요. 며칠전 전직 언론인 S 선배와 막걸리를 한잔 하며 처음 알았답니다."

이중섭 '흰 소' (홍익대 박물관 소장)
 

"문화에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는 S 선배는 '언제부터인가 마포의 역사와 문화가 홀대받는 느낌'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는데요. 그러면서 '이중섭 화백이 신수동에 살았다고 하는데,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알지못해 안타깝다'고 하셨지요. 표지석이라도 만드는 후대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이해했는데요. 57년간 마포에서 살아온 저로서는 어떤 사명감이 느껴졌어요. 국민화가가 살았던 곳을 찾아야한다는 사명감. 숙부님(박홍섭 전 마포구청장)을 찾았지요. 마포의 역사는 늘 숙부님을 통해 단서를 찾아왔기에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어요."

이중섭 '호박'(1954)

"숙부님은 그림과 관련된 이야기 두 편을 들려주셨지요. 그 중의 한 편이 이중섭 얘기였어요. 대학 재학시절(성균관대 법대 61학번) '민사 연습' 과목을 강의했던 이광석 변호사(前 부장판사)가 제자인 숙부님께 고인의 그림 한 점을 선물로 주시려 했다는거예요. 당시에는 덕수궁 옆에 법원이 있었고 법원과 가까운 무교동에 변호사 사무실이 많았는데, 이 변호사도 무교동(프레스센터 뒤편)에 사무실이 있었다고 하시네요. 그런데 경제적 어려움으로 사무실이 비좁아지면서 구석에 있던 고인의 그림 한 점을 갖고가라고 하셨데요. 고인과 친척 사이라고 하시면서 말이죠. 아무래도 숙부님이 자신의 집 근처에 사는데다 미술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존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실제 숙부께서는 홍대 미대생들이 주축인 '홍익화우회'라는 모임에 함께 할 만큼 그림에 관심과 재능을 갖고 계시죠. 하지만 은사의 호의를 안타깝게도(?) 끝내 고사하셨다고 하네요. 과거에도 분에 넘치는 선물은 받지않으셨던거 같애요.

그 그림이 바로 글 위에 있는 '호박'으로, 나중에 호암미술관에 소장돼있음을 알게되셨다고 하시네요. 이중섭은 말년에 '소'외에도 '호박'에 매몰돼, 자신이 덮고자는 이불까지 호박색이었다는 증언이 있을 정도예요. 성균관대 강사를 하셨던 이광석 변호사의 집은 마포구 신수동에 위치한 AID 주택(한미재단 원조로 지어진 집)이었고, 그 인근은 호박밭이 빼곡했다고 하는군요. 숙부님 얘기는 여기까지였어요."

 

광성고등학교

 

광성고 후문(옛 정문)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보니 이광석과 이중섭은 실제 이종사촌이었어요. 한국전쟁 이후 통영 진주 등지에서 거주하던 이중섭은 1954년 6월 상경해 조카와 함께 종로구 누상동에서 살다가, 11월 마포구 신수동에 살던 이종사촌 이광석 변호사 옆 집으로 이사온 것으로 돼있어요. 신수동 AID(한미재단 원조) 주택이 유력해보이죠. 이듬해 1월 당시 미도파 백화점에서 작품전을 열었고 4월 대구에서 전시회를 열 즈음까지 신수동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여요. 그럼 신수동 AID 주택 터는 어디일까요? 숙부님 기억에 따르면 광성고등학교 후문 앞이었다고 하시는군요^^ 과거에는 정문이었는데, 학교건물을 증축하면서 후문으로 바뀌었어요. AID 주택은 해방이후 미국의 원조로 서울 곳곳에 지어진 기록이 있는데, 신수동에도 있었던 모양이예요. 이제 S 선배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다고 봐야겠죠ㅋ"

광성고 후문 앞길

 

광성고 후문 앞 공원

"자~ 이제 70년전 역사의 퍼즐을 맞춰보죠. 이중섭 화백은 38살(1954년 11월)에 이종사촌인 이광석 변호사가 살던 집 옆(광성고 후문)으로 와서 지내면서 당시 신수동에 많던 호박 밭에 꽂혀서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볼 수있죠. 옆집에 살던 이종사촌 형에게 그림을 몇 점 줬을꺼고, 그 사촌 형은 40살(1956년 9월)에 고인이 타계한 뒤 성대 강사(1960년대 초)로 법학도들을 가르치다가 미술에 관심이 많던 당시 20대 초반의 동네 제자에게 그림 한 점을 선물하려고 했던 거겠죠. 하지만 그 제자가 선물을 고사하면서 그 그림은 어떤 경로인지 모르지만 삼성 집안으로 흘러들어가게 됐던 거겠죠."

천주교 신수동 성당

 

신수동 옛 이름 '무쇠막' 표지석 (신수동 성당 앞)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과거사지만, 국민화가 이중섭이 말년에 우리 동네인 신수동에 살면서 호박 그림에 열정을 쏟아부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은 큰 수확이네요. 뿌듯하지요. 마포의 역사와 문화를 한걸음 더 깊게한 듯 싶어서 말이죠. S 선배는 최근 '신수동 성당 50년사'를 집필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성당을 지을 당시 내부 설계를 한 홍대 전명현 교수님을 파주에서 잘 만나고 오셨는 지 궁금하네요. 성당 앞에는 신수동의 옛 이름 '무쇠막' 표지석이 있더라구요. 선배님과 봉평 막걸리 한잔 더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