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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널, 박경수입니다"

경의선숲길의 역사와 현직 단체장의 관견(管見)

"지난 금요일 늦은 오후에 경의선숲길을 걸었어요. 공덕역에서부터 대흥동, 염리동, 서강대 앞을 거쳐 동교동, 연남동, 홍제천까지. 1시간 남짓 걸었는데요. 폭염특보가 내려져서 그런지 시원한 녹음(綠陰)을 즐기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벤치에 앉아 더위를 식히거나, 그늘길을 걸으며 더위를 잊으려는 남녀노소 시민들. 홍대가 가까워질수록 젊은이와 외국인이 급격히 많아졌죠.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한 마포의 명소가 된 지 오래예요. 시민들 모두가 부담없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원인 것이죠. 굳이 특별한 명칭이 필요하거나 뭔가 상징물은 필요하지않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논란이 컸던 마포구의 '전직 대통령 흉상' 건립 계획은 좌초됐어요. 야당의 반발과 구민들의 부정적인 여론이 한몫을 한 것이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어요. 하지만 '화합의 거리' 조성 계획은 여전히 남아있는거 같아서 개운치않네요."

경의선숲길 대흥동 구간(여름)
경의선숲길 대흥동 구간(겨울)

 

경의선숲길의 역사

"이번 기회에 경의선숲길의 역사를 살펴보는건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지난 20세기만해도 화물열차가 석탄을 실어나르던 철길이 있던 곳이었으니까요. 현재 서강대역 옆에는 당시 석탄 집하장이 있었고 바람만 불면 탄가루가 날리는 열악한 환경이었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코레일은 늘어난 수도권 승객 수송을 위해 경의선을 전철화하기로 하고 고가 철도 건설을 추진했는데요. 고가 철도는 지하 철도에 비해 건설비가 적게드는 장점이 있었어요. 하지만 흉물스러운 고가 철도에 반대하는 마포 주민들의 투쟁으로 결국 철길은 지하화됐답니다. 그 후 지상에는 아름다운 공원이 조성됐는데요. 이 모든 과정에 구민들과 뜻을 같이 한 당시 박홍섭 마포구청장이 계셨어요. 제 숙부님이지만 헌신적인 노력을 감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늘 자신의 고향, 마포를 생각하며 살아온 청렴한 어르신이니까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하잖아요. 경의선숲길은 그 자체만으로도 과거를 지나 현재를 담고 있는 미래 마포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연트럴파크'로 불리는 연남동 경의선숲길 조성을 점검하는 박홍섭 마포구청장(2012년)

 

젊은이들로 가득한 경의선숲길 연남동 구간(뉴욕 센트럴파크에 빗대 연트럴파크로 불리고 있어요.)

"아무쪼록 마포구가 구민들과 좀 더 소통하는 현명한 판단으로 경의선숲길이 더이상 논란의 장이 되지않기를 바랍니다. '아침저널, 박경수입니다'(2023.12. 읽고쓰기 연구소) p126~p130에 실려있는 제 글에는 경의선숲길의 역사가 상세히 씌여있어요. 아래 글이예요."

 

지난 20세기에만 해도 마포에는 남북을 가르는 오래된 철길이 있었다. 공덕동에도 대흥동에도 연남동에도 그랬다. 수도중학교 담임선생님은 종례시간에 철길에서의 안전을 당부했다. 나는 등하교 때마다 이따금 굉음을 내며 지나는 화물열차에 서둘러 철길을 건너며 마음을 졸였다. 그 화물열차에는 주로 석탄이 실려있었고, 신촌 인근 집하장에 이를 모두 쏟아냈다. 남산만큼이나 높이 쌓인 검은 언덕은 마포의 어두운 표정이기도 했다. 바람부는 날이면 탄가루가 꽤나 날렸다. 외지인들은 공덕동 로터리 철길에 내걸린 대형 간판(1981년 '전두환 대통령 취임,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 등)을 보며 권위적인 국가행사의 위상을 느낄 뿐 그 철길의 명암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녹슨 철길이 바로 경의선이었다.

숙부님(박홍섭 전 마포구청장)은 남북관계의 복원을 희망하며 경의선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셨다. 특히 경의선 철길이 지역 생활권의 통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주거환경에도 보탬이 되지 못한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신 기억이 있다. 그 관심과 고민은 2002년 구청장에 처음 당선되며 변곡점을 맞게됐다. 당시 코레일이 경의선 전철화를 추진하면서 철길 위 고가철도 건설을 계획하자 구청장이 지역 주민과 함께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연남동에서 시작된 고가철도 반대투쟁은 신수동, 대흥동 등으로 번졌고 코레일 본사 대전에서 원정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마포 국회의원들의 협조 속에 주민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경의선을 지하에 건설하기로 수정된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사라지는 지상의 철길을 공원으로 조성하기 노력이 시작된 것인데, 숙부님은 이른바‘경의선 숲길 플랜’을 서울시와 코레일에 제안해 끝내 관철해냈다. 지상의 폐철길을 숲이 우거진 공원으로 마포 구민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공덕동 철길이 역사 속에 사라지던 2006년초, 구민들은 KBS 9시뉴스에서 구청장의 밝은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숙부님은 2016년 경의선 숲길이 완성된 뒤에도 늘 그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도로로 인해 산책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서강대역 인근 신촌로에 구름다리가 만들어지고, 대흥동과 연남동 입구 도로의 횡단보도가 모두 2배 이상 넓어진 이유다. 지금은 서울시와 마포구의 예산 지원으로 공공와이파이까지 제공되고 있다. 폐철길의 모범적인 친환경 복원 사례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용산으로까지 숲길이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쉬운 일이다. 공덕동 끝지점에서 도로 건너편을 바라보면, 한 대기업의 마천루가 용산을 향하는 시야를 막아선다. 어떤 이유 때문인 지, 언제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다. 안타까울 뿐이다. 숲길 터를 무상으로 제공받은 서울시가 뒤늦게 코레일로부터 소송을 당한 것도 그렇다. 서울 한복판 노른자위 땅이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활용되는걸 마뜩치않게 바라보는 분들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숙부님은 건물보다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셨다. 변변한 나무 한그루 없던 환일고교 옆 만리배수지에 공원을 조성한 것이 그렇고, 한강 옆 군부대 이전터에 들어선 현석동 밤섬공원이 그렇다. 신축 아파트만 즐비한 아현동·염리동 꼭대기에 쌍룡 어린이공원을 만든 것이 그렇고, 외국인 묘지에서 절두산을 잇는 양화진 성지도 역사와 환경을 모두 아우른 마포구청장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물론 그 가운데 으뜸은 역시 경의선 숲길이다.

경의선 숲길은 매일 시민들로 붐빈다. 새벽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시작하고 밤늦게까지 걸으며 쾌적한 마포를 느낀다. 가족과 친구와 애인과 직장동료와 반려견과 함께 삶의 여유를 만끽한다. 봄에는 아름다운 벚꽃으로, 여름에는 시원한 녹음으로, 가을에는 운치있는 단풍과 낙엽으로, 겨울에는 그 나름의 매력으로 찾는 곳이다. 나도 주말이면 경의선 숲길을 걷는다. 지인들의 권유가 한몫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매력에 빠져든다. 건강한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이곳에 자부심이 커진다. 숙부님은 경의선 숲길을 걸으며 이제는 어떤 생각을 하실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