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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널, 박경수입니다"

역사를 간직한 마포의 교회들...동막교회, 산성교회

"4월의 마지막 일요일은 마포의 교회 역사와 함께 한 뜻깊은 날이었네요. 먼저 대흥동 동막교회를 빼놓을 수 없어요. 올해 120주년을 기리는 홈커밍데이였거든요. 오랜 세월 교회와 함께 해온 원로분들을 초청해 마음을 나누는 행사였는데, 저는 학창시절 교회 청년회장을 맡으셨던 숙부님(박홍섭 전 마포구청장)을 모시고 기꺼운 마음으로 교회를 찾았죠. 그 이유는 사무엘 무어 선교사(1860~1904)가 세운 동막교회의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었어요.

동막교회 청년회 태릉 야유회(1958년)
동막교회 원로들의 홈커밍데이(2024.04.28.)

 

조선이 근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폐쇄적인 신분제도를 꼽는데요. 당시 중인은 물론 천민 특히 백정과 함께 예배를 본 첫 교회가 바로 마포의 동막교회예요. 미국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에 비견될 만큼 대한제국의 일대 변혁이었다고 봐야죠. 구조적인 신분차별을 없애달라고 고종황제에게 보낸 탄원서 복사본도 교회에 있더라고요.(원본은 미국에 있다고 하네요.) 숙부님은 '용강초등학교가 개교할 당시(1916년)에도 양반과 중인들이 자신의 자식들과 천민 특히 백정 자식들을 함께 공부시킬 수 없다며 거세게 반대했다'는 증조부의 생전 전언을 얘기하시면서 사무엘 무어 선교사의 업적을 강조하셨지요. 제 증조부께서는 마포에 최초 한약방을 연 선각자셨다고 하는데, 그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할께요ㅋ 아무튼 동막교회는 마포의 아니 대한민국 근대사에 족적을 남긴 뜻깊은 유적지임에 틀림없어요.

고종 황제에게 신분차별 폐지를 건의한 사무엘 무어 선교사의 탄원서
동막교회 역사를 설명하는 곽재욱 목사님
신분차별을 없앤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숙부님

cf) 동막교회와 저와의 인연은 제 블로그(2023.12.31.)에 남아있으니 참고하세요.

아현동 산성교회 얘기도 해야겠네요. 아현동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죠. 지난 세기만해도 서민들의 달동네였거든요. 특히 아현동 38번지는 그 꼭대기였구요. 지금은 강남이 부럽지않은 고급 아파트가 가득한 부촌이 됐어요. 그 자리에 산성교회가 세워진게 1971년 4월이라고 하니까, 올해로 53주년이 된거죠. 저는 지난해 가을 음악회에 처음 참석했었는데, 가수 서유석 선생님 등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더군다나 아현동 주민센터 옆에 독립투사 '김익상 의사' 표지석을 세우는데도 기여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반세기를 넘긴 교회의 깊이를 이해하게됐답니다. 53주년 축하예배에는 윤항기 목사님이 '여러분'을 부르며 축하의 분위기를 한껏 띄워주셨지요. 산성교회에는 변화하는 마포의 현대사가 담겨있어요.

예배를 준비하는 이성환 목사님
'여러분'을 열창하는 윤항기 목사님

cf) 독립투사 김익상 의사 표지석에 대한 글은 제 블로그(2024년1월2일)에 남아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