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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널, 박경수입니다"

'가자전쟁 반전운동'에서 '68 운동'을 떠올리며

"이른바 '가자전쟁'에 대한 반전시위가 미국 대학생들로부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젊은이들로 확산되고 있다는 국제뉴스가 이어지고 있어요.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반유대주의에 대한 경고에 나섰지만, 미 수정헌법 1'표현의 자유' 논란과 함께 미 정치지도자들의 무기력함을 드러내고 있고요. 전쟁이 시작된 지 7개월이 넘었고 팔레스타인 사상자가 10만명을 훌쩍 넘었음에도 국제사회의 휴전 노력은 지지부진하잖아요. 대학생들이 나서게된 배경이라고 봐야겠지요. 지난 20세기 서구 대학생들의 베트남전 반전시위에서 비롯된 사회변혁운동 '68운동'을 생각하게된 계기가 됐네요.“

mbc 뉴스 화면 캡처(2024.5.8.)

'68 운동'을 시작한 프랑스 대학생들

"1960년대 말 우리나라는 군부정권의 경직된 시대였던데다 베트남에 파병까지 했던 상황이었잖아요. 당시 미국과 유럽의 반전 흐름이 전달될 수 없었겠죠. 하지만 전쟁 당사자인 미국에서부터 대선(196811)을 앞두고 대학생들의 반전시위가 커지고 있었고요. 그에 앞서 프랑스에서 5월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지는거죠. 그 단초는 3월 대학생 몇명이 반전 구호와 함께 미국 어메리컨 익스프레스사를 점거한 것인데, 여기에 시민들과 공공노조를 비롯한 노동자 세력이 대거 합류하면서 사회변혁 요구로 확대되게된거예요. 미디어역사의 측면에서 보면, 1960년대는 미국과 유럽에서 TV의 대중화시대거든요. 경찰이 반전시위를 물리력으로 진압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리얼하게 전해지면서 드골 정부 장기집권에 대한 파리 시민들의 불만이 분노로 이어졌다는 분석이지요. 구조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TV와 같은 '매스미디어'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주장한게 이해가 되네요. 이듬해 결국 드골 정부는 정권을 내놓게됩니다. 프랑스에서 '68운동''5월 혁명'으로 부르는 이유예요. 다만 공산당은 시위에 함께 하지 않으면서 대중적인 신뢰를 잃고 회생이 어려울만큼 소수화되고 말았답니다. 아이러니컬하지요. 프랑스 공산당은 '68운동' 이전까지는 세력이 막강했는데, 마르크스철학 일부를 비판하는 공산당원 알튀세르를 용납하지 못할만큼 편협했던 모양이예요."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피를 흘리는 학생(AFP 통신, 1968.5)

 

'68 운동'으로 나치를 청산한 독일 대학생들

"'68운동'이 전후 질서 청산으로까지 발전한 나라는 당시 서독이예요. 독일은 나치정권의 세계대전 책임으로 인해 나라가 분단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잖아요. 하지만 1945년 종전 이후 '68 운동' 이전까지는 서독에서 나치 세력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고 하지요. 경제부흥을 명분으로 집권하고 있었던 것인데, 서독 대학생들의 강력하고도 거센 시위에 정치적 힘을 잃고 역사에서 퇴장하게됩니다. 당시 일례를 들면, 나치 출신 서독 총리가 국회 연설을 하던 도중 한 대학생이 몰래 접근해 뺨을 후려치는 테러를 가했구요. 서독의 대표적인 좌파(프랑크푸르트학파) 학자인 아도르노 교수는 물리력을 앞세우는 학생 시위에 반대하다가 수업도중 가슴을 드러내며 조롱하는 여학생에게 충격을 받고 학교에서 사라진 뒤 스위스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68 운동'1970년 최초의 사회민주당 집권과 빌리브란트로 하여금 '동방정책'과 함께 이듬해 폴란드를 방문해 홀로코스트,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무릎을 꿇고 사과와 반성을 하게되는 것이죠. 빌리브란트는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아요. 이 대목에서 여러가지가 떠오르는데요. 친일세력의 청산이 이뤄지지 못한 우리의 아픈 과거와 전쟁에 대한 반성없는 일본 정치인들의 뻔뻔한 태도 말입니다."

빌리브란트 서독 수상 홀로코스트 참회(1971.12. 폴란드)

대학생들 반전시위는 시대에 대한 변혁 요구

 "'68 운동'이 베트남전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전시위에서 시작됐지만, 사실 여기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변화 욕구를 반영하지 못한 정치세력, 정치구조에 대한 미국과 유럽 시민들의 반발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봐야하지요. 1968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 닉슨 후보는 베트남 종전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어렵사리 당선됐고(0.7% p), 1969년에는 프랑스 드골 대통령이 교체됐고, 1970년에는 나치 청산을 모토로 독일 사회민주당이 처음 집권하게되는 것이죠.

'가자전쟁'에 대한 대학생들의 반전시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선진 강대국의 정치세력이 지나치게 과거 지향적이잖아요. 인터넷·유튜브 등 sns와 함께 빠르게 소통하고 변화하는 21세기에 부응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지요. 올해 말 치러지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바이든·트럼프 그 누구에게도 '프론티어 정신'을 기대하기 어렵고, 중국의 시진핑·러시아의 푸틴 등 장기 집권자들은 늘어나고 말이죠. 우크라이나전·가자전·미얀마 사태는 해결이 난망해보이고요.

우리 모두가 대학생들의 작은 외침에 귀기울여할 때입니다. 우리의 정치도 미래지향적으로 바뀌어야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