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오전부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헬기로 이동해 삽교천 방조제 준공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충남 당진과 아산 사이에 만들어진 삽교천 방조제의 길이는 무려 3km가 넘었고, 그 담수호로 엄청난 농업` 공업용수 공급이 가능해졌다. 환갑을 갓 지난 초로의 박 대통령은 이 행사를 끝으로 더 이상 국민앞에 설 수 없었다. 그날 저녁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만찬 도중 중앙정보부장 총탄에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한국현대사에 획을 그은 이른바 ‘10.26 사건’. 1인 장기집권의 폐해가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폭발하자 권력 내부의 불화가 깊어지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18년 동안의 장기집권은 그렇게 불행한 죽음으로 마무리됐다.
그 이듬해인 1980년 10월 27일. 전국의 사찰과 암자에 군인과 경찰 병력이 들이닥쳤다. 당시 동원된 병력은 3만2천여명에 달한다. 조계종 스님 등 불교계 인사 153명이 강제로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무차별 구타와 고문이 자행됐다. 이른바 ‘10.27 법난(法難)’이다.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은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해나가는 과정에서 불교계가 무참히 희생됐다는게 통설이다. 한국 불교사의 최대 치욕으로 꼽힌다. 뒤늦게 ‘국가권력 남용사건’으로 공식 규정되고 관련 법규도 만들어졌지만 그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그리고 2011년 10월 26일. 정치 경험이 없는 시민운동가 출신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심장부, 수도 서울의 수장으로 뽑힌 것이다. 한국현대사에 있어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이다. 민의가 가감없이 투표에 반영된 결과다. 민주주의(民主主義)다. 이로써 어두웠던 10월의 마지막 주는 30년만에 새로운 희망의 한 주로 자리매김되지않을까 싶다. 입동(立冬)이 다가오지만 걱정보다 기대가 커진다. 그만큼 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10/27(목) BBS 칼럼/박경수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