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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수 기자의 취재수첩& 칼럼/2011년 취재수첩& 칼럼

10월 마지막 주에 담긴 한국현대사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황금 들녘에는 추수의 흐뭇함이 담겨있다. 쪽빛 하늘밑에 단풍이 곱게 물든다. 아름답다. 국화도 활짝 핀다. 그 국화송이에 아침마다 서리가 내린다. 청명한 날씨속에서도 밤기온이 크게 떨어지기에 맺히는 서리다. 산간에는 첫 얼음이 얼기도 한다. 늦가을이지만 초겨울만큼이나 쌀쌀하다.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쉽사리 감기에 걸린다. 다가오는 겨우살이 준비에 서민들의 근심이 늘기 시작한다. 상강(霜降)과 입동(立冬) 사이, 10월 마지막 주에 엿볼 수 있는 우리 평범한 세상사다. 그 세상사에 굴곡(屈曲)의 우리 정치사(政治史)도 숨어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오전부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헬기로 이동해 삽교천 방조제 준공행사에 참석한 것이다. 충남 당진과 아산 사이에 만들어진 삽교천 방조제의 길이는 무려 3km가 넘었고, 그 담수호로 엄청난 농업` 공업용수 공급이 가능해졌다. 환갑을 갓 지난 초로의 박 대통령은 이 행사를 끝으로 더 이상 국민앞에 설 수 없었다. 그날 저녁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만찬 도중 중앙정보부장 총탄에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한국현대사에 획을 그은 이른바 ‘10.26 사건’. 1인 장기집권의 폐해가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폭발하자 권력 내부의 불화가 깊어지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18년 동안의 장기집권은 그렇게 불행한 죽음으로 마무리됐다.

 그 이듬해인 1980년 10월 27일. 전국의 사찰과 암자에 군인과 경찰 병력이 들이닥쳤다. 당시 동원된 병력은 3만2천여명에 달한다. 조계종 스님 등 불교계 인사 153명이 강제로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무차별 구타와 고문이 자행됐다. 이른바 ‘10.27 법난(法難)’이다.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단은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해나가는 과정에서 불교계가 무참히 희생됐다는게 통설이다. 한국 불교사의 최대 치욕으로 꼽힌다. 뒤늦게 ‘국가권력 남용사건’으로 공식 규정되고 관련 법규도 만들어졌지만 그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하다.

 그리고 2011년 10월 26일. 정치 경험이 없는 시민운동가 출신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심장부, 수도 서울의 수장으로 뽑힌 것이다. 한국현대사에 있어 미증유(未曾有)의 사건이다. 민의가 가감없이 투표에 반영된 결과다. 민주주의(民主主義)다. 이로써 어두웠던 10월의 마지막 주는 30년만에 새로운 희망의 한 주로 자리매김되지않을까 싶다. 입동(立冬)이 다가오지만 걱정보다 기대가 커진다. 그만큼 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10/27(목) BBS 칼럼/박경수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