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의 기억은 늘 취재현장의 역사적 사건과 맞닿아있다. 온종일 취재해 기사화하면서 현장의 기록을 가감없이 남겨왔기 때문이다. 특히 그 현장이 역사(歷史)의 중심이었다면 그 기억은 어쩌면 영원히 잊혀지지않을 지 모른다. 지금도 성수대교를 건널 때면 생각난다. 서초동 옛 삼풍백화점 터를 지나칠 때면 떠오른다. 붕괴사고 직후의 현장이 뇌리에 남아있는게다. 여의도의 기억은 더 깊다. 10년 가까이 오랜 취재영역이었고 왠만해서는 격변의 흐름을 놓치지않은 탓이다.
2001년 11월 8일 저녁. 여의도 국회앞에 있던 새천년민주당사는 침울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선언이 전격 발표되고 있었다. 총재 비서실장이던 심재권 의원이 김 대통령의 친서를 읽어내려갔다. 동교동계 인사들이 곳곳에서 울먹였다. 취재기자들 모두 놀랐다. 당시만해도 대통령은 집권 여당의 총재로 당권까지 장악하고 있었는데, DJ는 그 권한을 포기하고 평당원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10월 세군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전패하면서 민주당 내부의 쇄신요구가 거세진 결과였다. 정동영 의원은 쇄신파를 대표해 당시 최고 실세였던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후퇴를 요구하며 이른바 정풍(整風)운동을 주도했다. 대선을 1년 남짓 앞둔 당시 민주당은 연일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소일했지만 한국 정당사에 첫 국민참여경선이라는 제도로 기사회생의 계기를 마련했다.
2011년 11월 4일. 한나라당의 분위기가 심상치않았다. 소속 의원 5명이 쇄신(刷新)의 날을 세운 것이다. 현 정권의 실정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현직 대통령을 겨냥했다.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를 포함해 5대 국정쇄신을 요구했다. ‘오만과 불통으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부’라는 표현까지 썼다. MB 정권의 핵심공약인 ‘747 공약’의 폐기도 촉구했다. 여당 의원들의 쇄신 요구는 잇따르는 수도권 선거 패배 때문으로 보인다. 4월 경기도 분당에 이어 지난달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패하자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대선을 1년 남짓 앞둔 지금 청와대는 한미 FTA 전선속에서 ‘침묵(沈黙)’으로 답하고 있다.
10년의 간극을 두고도 여당의 모습은 이처럼 흡사하기만하다. 집권 4년차 말기, 대통령 인기는 떨어지고 선거는 힘들어진다. 측근 인사들은 하나 둘 구속되고 레임덕은 가속화된다. 청와대를 향한 여권 인사들의 비판과 개혁요구는 매정하기까지하다. 그럼에도 10년전 민주당은 정권을 재창출했다. 한나라당도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을까? 궁금함이 점점 더 커져간다.[BBS 칼럼/박경수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