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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널, 박경수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74년을 맞는 한반도의 현주소

"이제는 새로운 미래로 향해야할 때임에도 여전히 한반도는 과거 지향적이죠.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남북간 충돌의 우려는 더 커지고 있구요. 대북전단, 오염풍선에 이어 급기야 푸틴의 방북과 함께 사실상 북러동맹이 복원됐다는 뉴스는 현실적인 걱정을 키우고 있네요. 한국전쟁 발발 74년을 맞는 한반도의 현주소입니다."

퍼시픽(2010)의 한 장면...오키나와 주민들을 방패막이로 활용한 일본군(미드 '퍼시픽'은 일본 국내 상영이 불허됨)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의 한 장면...유태인 집단수용소의 문을 여는 미 공수부대
 

 

전쟁은 인류의 디스토피아

"얼마전 후배의 추천으로 전쟁 미드(미국 드라마) 2편을 봤어요.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 2001)'와 '퍼시픽(the pacific 2010)'. 제2차 세계대전을 실화를 토대로 리얼하게 그려낸 명작들이지요. 1940년대 전장인 유럽과 태평양을 배경으로 각기 미 공수부대와 해병대의 치열했던 전투가 담겨있어요. 비교적 오래전 상영된 미드여서, 매니아들은 과거의 유물이라고 할 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10부작 미드 2편에 푹 빠졌지요. 특히 독일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오키나와 주민들을 자폭시키는 일본군 만행은 목불인견(目不忍見)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참상으로 남았는데요. 비록 드라마를 통해 엿본 편린이었지만, 전쟁은 인류의 디스토피아(dystopia 최악의 암울한 미래)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다시 갖게됐네요. 전쟁을 고도의 정치행위로 볼 수 없다는 뜻이지요."

 

과거로 돌아가는 한반도의 시계

"푸틴과 김정은의 이른바 '2024년 조약'은 한반도의 시계를 한국전쟁 직후로 돌려놓고 말았죠. '1961년 북-소 동맹 조약'에 거의 근접했기 때문이예요. 자동군사개입이 아니라고 하지만 군사개입 근거를 명확히 한거잖아요. 사실상 북-러 동맹 복원이지요.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관계는 1990년 수교 이전으로 멀어지고 말았어요. 더욱이 우리나라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여부를 놓고 푸틴의 격한 발언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앞으로 더 높아질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토요일인 어제는 부산에 미국 핵항공모함이 입항했다고 하는데, 핵무장론이 국내 보수파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지않을까 걱정이 커지구요. 한반도에 훈풍이 불었던게 어제 같은데, 불과 몇년만에 격세지감을 느끼게되네요.

영화 '판문점'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는데요. 2018년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남북 경계를 오가는 그 역사적인 장면 말이예요. 일장춘몽(一場春夢)이 되는걸까요? 한국전쟁 발발 74년을 맞는 한반도의 걱정스럽고 위험스러운 현실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판문점'(2024.06.) 상영중

*아래 글은 2019년에 쓴 제 칼럼이예요. <아침저널, 박경수입니다> 제 책에도 실었는데, 과거 남북관계를 취재한 후기라고 봐야죠. 금강산을 찾았던 1999년이 그립네요.*


금강산 목란관 앞(1999.03.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필자인 박경수 기자)

[금강산(金剛山)의 추억]

1999년 3월의 첫주말, 장전항에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금강호 객실에서 뿌연 창문을 통해 내다본 북녘땅은 날씨 때문인지 더 을씨년스러웠다. 배에서 내려 검문소를 통과해 현대 버스에 오르기까지 다들 말을 아꼈다. 관광의 기분을 내기 시작한 것은 목란관을 지나 외금강에 오르며 그 장엄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면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천선대에서 바라본 비경이 구룡폭포에 다달아서는 함박눈과 함께 또다른 절경을 보여줬다. 지금도 꽤나 많은 아날로그 사진이 남아있는데, 무엇보다 내 기억에 오롯이 남아있다.

금강산을 만난 것은 정비석의 ‘산정무한(山情無限)’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글을 보며 마의태자를 생각했던 게 어제같다. 그 다음은 아마 ‘그리운 금강산’인 듯한데, 그 노래를 들을 때면 가곡의 웅장함 이상으로 분단의 서글픔이 가슴으로 전해졌었다. 가보고 싶다는 헛된 상상이 현실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6월이다. 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소 5백마리를 몰고 방북하면서부터다. 당시 소를 실은 트럭 50여대가 이른 아침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자유로를 달리던 장관을 잊을 수 없다. 연로한 탓에 승용차에서 혼자 내리기도 쉽지않았지만 정 회장의 눈매에 담긴 의지는 취재기자인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결국 정 회장이 한번 더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뒤인 11월18일,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은 닻을 올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먼 바닷길을 밤새 돌아서 갔지만, 나중에는 비무장지대를 지나 가까운 육로를 통해 오갈 수 있었다. 가기 편해지면서 이산가족들도 거기서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 고 강한옥 할머니가 북한의 막내 동생을 만난 데도 그 곳이었다. 2백만명 가까이가 오갔다. 2008년 7월, 민간인 피격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지난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조선시대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를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실경산수화는 실물 그대로를 화폭에 옮기는 것인데, 역시 조선의 화가들 시선은 금강산에 맞춰져있었다. 겸재 정선을 시작으로 강세황, 김윤겸 그리고 정조의 명을 받은 김홍도, 김응환에 이르기까지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의 수려함이 이어졌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장안사(長安寺), 유점사(楡岾寺)의 옛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넓지않은 전시관을 갤러리들과 부대끼며 두 번이나 돌았다. 박물관을 나서며 내금강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옛 선인들의 화폭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 발로, 내 눈으로 말이다. 금강산의 추억을 더하고 싶은게 비단 나만은 아닐텐데...[2019.11.03. BBS 칼럼]

금강산 구룡폭포(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