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숲길은 마포를 대표하는 공원으로, 이제는 상징이 돼버렸어요. 나도 과거 BBS 재직시에는 아침방송을 끝내면 가벼운 조식 후 여기서 산책을 하는 잔재미를 누렸지요. 이처럼 모두에게 걷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곳이 경의선숲길이예요. 나는 요즘도 주말이면 이 곳을 걸어요. 과거와의 차이는 내 이름이 적혀있는 선거운동복을 입고 걷는다는 것뿐. 주민들에게 명함을 드리지도 않아요. 주말의 여유를 깨트리지않으려는 조그만 배려라고 봐야죠. 그냥 걷다보면 주민들과 눈인사도 하고 얘기도 나누게되니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오늘은 걷다가 뜻밖의 귀인을 만났어요. 제게 말을 건네려는 어르신을 발견하고 먼저 인사를 드렸더니, 늦여름에 만났던 '맨발의 할머니'였답니다.
아마 다섯달전쯤으로 거슬러올라가야할 것 같은데, 경의선숲길을 걷다가 송영길 전 대표를 만난 거예요. 송 전 대표는 제가 4년간 진행한 시사프로그램 <박경수의 아침저널> 단골 출연자이기도 했고, 그에 앞서 대학 선배여서 무척 반가웠지요. 용산으로 이사를 온 뒤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 하셨어요. 담소를 나누던 중 팬이라며 사진을 찍어달라던 어르신이 계셨고, 두 분 사진을 찍어 보내드렸죠. 그 어르신이 바로 '맨발의 할머니'예요. 사진을 보내드리느라 전화번호를 알게됐는데, 존함을 몰라서 그냥 그렇게 저장해놓았던거죠. 건강을 위해 맨발로 경의선숲길을 걷는다고 하셨으니까요. 오늘 비로소 그 어르신 존함을 알게됐네요ㅋ"
경의선숲길은 숙부님(박홍섭 전 마포구청장)의 애정이 담겨있는 곳이예요.
『아침저널, 박경수입니다』 (읽고쓰기연구소, 2023) 126p에 실려있는 글입니다.
지난 20세기에만 해도 마포에는 남북을 가르는 오래된 철길이 있었다. 공덕동에도 대흥동에도 연남동에도 그랬다. 담임선생님은 종례시간에 철길에서의 안전을 당부했다. 등하교 때마다 이따금 굉음을 내며 지나는 화물열차에 서둘러 철길을 건너며 마음을 졸였다. 그 화물열차에는 주로 석탄이 실려있었고, 신촌 인근 집하장에 이를 모두 쏟아냈다. 남산만큼이나 높이 쌓인 검은 언덕은 마포의 어두운 표정이기도 했다. 바람부는 날이면 탄가루가 꽤나 날렸다. 외지인들은 공덕동 로터리 철길에 내걸린 대형 간판을 보며 권위적인 국가행사의 위상을 느낄 뿐 그 철길의 명암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 녹슨 철길이 바로 경의선이었다.
숙부님은 남북관계의 복원을 희망하며 경의선의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셨다. 특히 경의선 철길이 지역 생활권의 통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주거환경에도 보탬이 되지 못한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신 기억이 있다. 그 관심과 고민은 2002년 구청장에 처음 당선되며 변곡점을 맞게됐다. 당시 코레일이 경의선 전철화를 추진하면서 철길 위 고가철도 건설을 계획하자 구청장이 지역 주민과 함께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연남동에서 시작된 고가철도 반대투쟁은 신수동, 대흥동 등으로 번졌고 코레일 본사 대전에서 원정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마포 국회의원들의 협조 속에 주민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경의선을 지하에 건설하기로 수정된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사라지는 지상의 철길을 공원으로 조성하기 노력이 시작된 것인데, 숙부님은 이른바‘경의선 숲길 플랜’을 서울시와 코레일에 제안해 끝내 관철해냈다. 지상의 폐철길을 숲이 우거진 공원으로 마포 구민들에게 돌려준 것이다. 공덕동 철길이 역사 속에 사라지던 2006년초, 구민들은 KBS 9시뉴스에서 구청장의 밝은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숙부님은 2016년 경의선 숲길이 완성된 뒤에도 늘 그 길을 걷고 또 걸으면서 도로로 인해 산책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서강대역 인근 신촌로에 구름다리가 만들어지고, 대흥동과 연남동 입구 도로의 횡단보도가 모두 2배 이상 넓어진 이유다. 지금은 서울시와 마포구의 예산 지원으로 공공와이파이까지 제공되고 있다. 폐철길의 모범적인 친환경 복원 사례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용산으로까지 숲길이 이어지지 못한 점은 아쉬운 일이다. 공덕동 끝지점에서 도로 건너편을 바라보면, 한 대기업의 마천루가 용산을 향하는 시야를 막아선다. 어떤 이유 때문인 지, 언제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다. 안타까울 뿐이다. 숲길 터를 무상으로 제공받은 서울시가 뒤늦게 코레일로부터 소송을 당한 것도 그렇다. 서울 한복판 노른자위 땅이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활용되는걸 마뜩치않게 바라보는 분들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숙부님은 건물보다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것을 좋아하셨다. 변변한 나무 한그루 없던 환일고교 옆 만리배수지에 공원을 조성한 것이 그렇고, 한강 옆 군부대 이전터에 들어선 현석동 밤섬공원이 그렇다. 신축 아파트만 즐비한 아현동·염리동 꼭대기에 쌍룡 어린이공원을 만든 것이 그렇고, 외국인 묘지에서 절두산을 잇는 양화진 성지도 역사와 환경을 모두 아우른 마포구청장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물론 그 가운데 으뜸은 역시 경의선 숲길이다.
경의선 숲길은 매일 시민들로 붐빈다. 새벽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시작하고 밤늦게까지 걸으며 쾌적한 마포를 느낀다. 가족과 친구와 애인과 직장동료와 반려견과 함께 삶의 여유를 만끽한다. 봄에는 아름다운 벚꽃으로, 여름에는 시원한 녹음으로, 가을에는 운치있는 단풍과 낙엽으로, 겨울에는 그 나름의 매력으로 찾는 곳이다. 나도 주말이면 경의선 숲길을 걷는다. 지인들의 권유가 한몫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매력에 빠져든다. 건강한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이곳에 자부심이 커진다. 숙부님은 경의선 숲길을 걸으며 이제는 어떤 생각을 하실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