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인류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한 곳인 이집트.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는 큰 광장이 있다. ‘해방(解放)’이라는 뜻의 ‘타흐리르’ 광장이다. 나일강 옆 신시가지의 중심에 위치해 이곳을 기준으로 도시의 모든 기능이 뻗어나간다. 지난달 11일, 그 광장에 시민 수십만명이 빼곡이 들어찼다. 독재정권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TV를 통해 전해지는 ‘타흐리르’ 광장의 모습은 20여년전 서울시청앞을 가득 메웠던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않았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민주화의 동질감이 느껴졌다.
아랍의 시민혁명은 튀니지에서 시작됐다. 지난해말 조그만 한 도시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던 20대 청년의 분신자살이 전국민적인 분노와 저항으로 확산됐다. 특히 높은 물가와 실업률, 거기에 부패한 정권의 치부까지 드러나면서 23년간 집권한 밴 알리 정권은 무너졌다. 튀니지의 국화(國花) ‘재스민’은 아랍에 휘몰아치는 시민혁명의 대명사가 됐다. 30년을 집권한 이집트 독재권력도 무너졌다. 총칼에 맞서는 시민들의 희생앞에 군(軍)의 지지를 잃은 무바라크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제는 40년을 넘게 집권하고 있는 리비아로 시민혁명의 불길이 옮아붙었다. 철권통치자 ‘카다피’가 위태로울만큼 시민들의 저항은 거세다. 얼마나 희생자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숱한 희생에도 반정부군의 세는 약해지지않고있다. 연일 리비아의 교전소식은 톱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재스민 혁명’의 여진은 아랍곳곳을 뒤흔들고 있다. 요르단과 오만, 바레인 등지에서 시위가 잇따르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입헌군주제 주장과 함께 시위가 예고돼있다. 아랍 왕정국가들도 근본적인 체제변화 요구에 직면해있는 것이다.
아랍의 시민혁명은 무엇보다 극심한 경제난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의 식량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느는데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맬더스법칙이 유일하게 적용되는 지역이다. 소수 집권층을 위한 독재권력이 계속되면서 식량난은 극도의 불만과 함께 민주화의 요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대표되는 이른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이다. 언론이 통제된 사회에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여론화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이 바로 SNS였다. 첨단매체를 활용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은 SNS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었다.
이른감이 없지않지만 아랍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을 만큼 ‘아랍의 시민혁명’은 이미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18세기말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침공한 이래 오랜세월 제국주의와 쿠데타, 독재로 신음했던 땅이다. 질곡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질 수 있을까? 우리들의 관심은 어느새 아랍에 쏠려있다.[3/4(금) BBS 칼럼/박경수 사회부장]